
실화에 기반한 영화 실미도는 단순한 극영화를 넘어, 대한민국 현대사의 어두운 단면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만든 작품입니다. 이 영화는 1970년대 실존했던 684부대와 그들이 고립되어 훈련받았던 실미도 섬에서 벌어진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국가가 개인을 어떻게 활용하고 버릴 수 있는지를 고발합니다. 실미도는 단순한 장소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권력의 이면, 정치적 계산, 그리고 잊힌 이들의 희생을 상징합니다. 영화 속 이야기의 배경이 된 실미도 섬과 684부대의 실체, 그리고 오랜 세월 은폐되었던 진실을 통해 우리는 과거와 마주하고, 국가와 개인, 정의와 책임이라는 질문에 다시 답하게 됩니다. 이 글에서는 영화 실미도가 다룬 실미도 섬의 역사, 684부대의 창설과 최후, 그리고 영화와 실제 사건의 차이, 나아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진실을 자세히 풀어봅니다.
실미도, 섬 어디에 있는가?
‘실미도’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약 4km 떨어진 거리에 위치한 조그마한 무인도로,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에 속해 있습니다. 이 섬은 썰물 시기에는 육지와 연결되어 걸어서도 접근이 가능하지만, 밀물 때는 완전히 고립되어 바다 한가운데에 떠 있는 외딴섬이 됩니다. 현재는 일반인의 출입이 허용되어 관광이나 트래킹 코스로도 사용되지만, 과거에는 국가 안보상 이유로 출입이 철저히 통제된 군사 기밀 구역이었습니다.
1960~70년대, 이 섬은 남한 정부에 의해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며 극비 작전이 진행되었던 장소입니다. 특히 684부대의 훈련지로 지정된 이후, 실미도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가장 어두운 비밀을 품은 공간이 되었고, 한동안 지도상에서도 실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섬의 험난한 지형과 외부와 차단된 환경은 특수부대 훈련 장소로서 이상적이었으며, 그 폐쇄성과 고립성 덕분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오랫동안 외부에서는 알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 실미도는 그 자체로 역사의 증인이자, 국가 권력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조작하고 은폐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로 남아 있습니다.
684부대, 그들은 누구였는가?
684부대는 1968년 1월 21일 발생한 북한 특수부대의 청와대 습격 사건(1.21 사태) 이후, 한국 정부가 보복 차원에서 조직한 극비 특수임무부대입니다. 북한의 도발에 맞서 남한도 대등한 대응을 해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 하에, 정부는 김일성 암살 임무를 수행할 부대를 창설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부대는 당시 국방부도 아닌 청와대 직속으로 조직되었으며, 그 존재 자체가 국가기밀로 분류되었습니다.
684부대는 일반 군인이 아닌, 사회적으로 소외되었거나 극빈 상태에 있던 사람들로 구성되었습니다. 형을 살던 수감자, 고아, 무직자, 범죄 전력이 있는 자 등 국가가 동원 가능한 '잊힌 사람들'이 선발되었고, 그들에게는 단 하나의 조건이 주어졌습니다. 임무 성공 시 ‘자유’와 ‘보상’을 보장하겠다는 약속. 그러나 그들이 실미도에 입도하는 순간부터는 인간이 아닌, 특정 임무를 위한 도구로 훈련되었고, 이름도 사라진 채 번호로 불리며 혹독한 훈련을 견뎌야 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훈련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산악 행군, 총기 훈련, 폭파술, 수중 침투, 생존 훈련 등 모든 훈련은 실전을 가정한 상태로 진행되었으며, 훈련 실패는 곧 사망이나 처벌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들은 단 한 번도 사회와 접촉하지 못한 채 실미도에 갇혀 살았고, 결국 자신들의 존재가 무의미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내부의 분노는 극단으로 치닫게 됩니다.
비극의 실미도 사건
1971년 8월 23일, 임무 무산과 처분 위기라는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자 684부 대원 24명 중 일부는 무장 반란을 일으킵니다. 대원들은 교관과 간부들을 살해하고 실미도를 탈출해, 무장한 채 육지로 상륙합니다. 그들은 인천을 거쳐 서울로 향하면서 군용 버스를 탈취하고, 청와대로 진입하려 시도했습니다. 일부 기록에 따르면 이들의 목적은 국가 지도부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고, 살려달라고 호소하려는 것이었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 상황을 국가 전복 시도로 간주하고, 군과 경찰을 총동원해 진압에 나섭니다. 서울로 진입하던 이들은 영등포구 대방동 부근에서 군의 저지에 맞서 교전했고, 그 자리에서 대부분 사살되었습니다. 생존자 일부는 비공개 군사재판을 통해 사형을 선고받고 즉시 처형당했습니다. 이 사건은 당시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으며, 모든 자료와 기록은 철저히 은폐되었습니다.
684부대 사건은 30년 가까이 침묵 속에 묻혀 있다가, 1999년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사건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세상에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2003년 영화 ‘실미도’가 개봉되면서 비로소 대중의 관심과 기억 속으로 소환되었고, 국민적 충격과 함께 거대한 역사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영화와 실제의 간극
영화 실미도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하지만 영화는 대중을 위한 스토리텔링 장치이기 때문에, 몇몇 설정은 허구적으로 각색되었거나 드라마틱하게 재구성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영화 속 주인공과 교관 간의 갈등, 내부에서 벌어지는 인간적인 고민과 고뇌는 실제 기록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관객의 공감을 유도하기 위한 극적 장치이며, 실화와 영화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화가 단지 오락적 목적을 넘어, 그동안 은폐되었던 국가 범죄를 조명했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고, 특정 목적을 위해 개인을 도구화하고, 이후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자 제거해 버린 이 사건은 단지 과거의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오늘날에도 국가 권력과 인간 존엄성 사이의 균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실미도는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국가가 개인을 어떻게 취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며, 영화는 그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창이 되었습니다.
실미도의 진실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실미도의 진실은 역사의 그림자입니다. 684부 대원들은 정식 군번도 없이 실미도에 투입되어, 자신들의 존재조차 인정받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들은 국가를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국가로부터 어떠한 명예도 보상도 받지 못한 채 잊혔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군사작전이 아니라, 국가 폭력과 개인의 존엄성에 관한 문제입니다. 진실은 종종 숨겨지고, 시간 속에 사라지지만,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에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실미도와 684부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집니다. 국가는 개인에게 어디까지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가? 그 권력은 어떻게 통제되어야 하는가?
영화 실미도는 그 물음에 대한 첫걸음을 내딛게 한 작품이며, 진실을 아는 것이 역사를 바로 세우는 첫 단계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줍니다.